1. (뭔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좀 이상하지만) 한국에 홍상수가 있다면, 미국엔 우디 알렌이 있다. 가볍지만 가볍지 않은 무엇, 이 어찌 즐겁지 아니할쏘냐? 이 글은 삶에 대한 유쾌한 통찰을, 영화라는 매체로 하여금 나라는 인간또한 느낄 수 있게 만든 유쾌한 감독에 대한 감탄과 경배이다.
2. '얘는 누구고, 뭘하고 있고, 얘는 또 누구고, 블라블라' 이 영화의 시작은, 그 어떤 영화보다 효과적이면서도 가장 비(非)영화적인 방법으로 자신이 만든 이 복잡한 세계(혹은 인생이라는 자체)를 설명한다. 사실 영화라 함은 이야기의 배경(여기서 배경은 캐릭터를 포함한 전부를 뜻한다)을 구축하는데(쉽게 말하자면 시나리오 작법책에서 말하는 '발단'을 뜻한다) 일정의 시간을 할애하고, 그 할애한 시간만큼 구축된 배경에서 오는 사건(갈등)을 통한 감동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. 근래 문득, 그 어떤 거지같은 영화도 러닝타임이 6시간 쯤 된다면 그럴싸한 영화가 되지 않을까?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. 영화라는 '세계'를 구축하는데 있어서, 소스는 많으면 많을 수록 '그럴싸해' 보이니까 말이다. 하지만 우리에게는 100분이라는 상업적, 심리적 기준이 존재하며, 영화적 배경을 소개하는데 있어 효율적인 시간과 방법은 절대적이다. 이러한 지점에서 보았을 때, 이 영화의 도입부는 충격적이다 못해 뭔가 싶다. 감독이 사용한 나레이션은 과연 인간극장의 '김○○(--세)'와 뭐가 다르단 말인가?
하지만 이러한 걱정은 영화가 끝날 때 쯤 해방된다. 이 영화의 가장 위대한 지점은 '발단'으로 시작하여 전개-위기-절정-결말을 치닫는 일반적인 영화와 달리, 커다란 '발단'안에 발단과 전개와 위기와 절정과 결말, 모두가 있다는 점이다. 쉽게 말해 한 세계 안에서 모든 갈등이 일어나는 것이 아닌, 세계와 세계와 세계와 세계(∞)를 끊임없이 구축하고 있다는 것이다. 그래서 이 영화에서는 캐릭터에게 처음부터 많은 설정을 짊어지게 할 필요가 없다. '김○○(--세)'로 시작한 캐릭터에게 부여되는 것, 그것이 바로 세계가 되고, 사건이 되는 구성이 이 영화의 특징이자, 본질이기 때문이다.
3. 감독의 센스는 다른게 아니다. 나는 캐릭터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예를 들때, 언제나 홍상수의 <극장전>에서 엄지원을 쫒아가는 김상경을 bust shot을 얘기하곤 한다. 김상경의 구질구질한 모습을 단적으로 표현해주는 그 꼬인 이어폰 줄. 아, 가히 놀라운 센스지 아니한가? 이러한 센스를 오늘, 나는 이 영화에서 다시 한 번 보았다. 화가 난 로이가 집을 박차고 나갔을 때, 그 풀어헤쳐진 셔츠. 그리고 흠모하던 여인 디아가 너무나 말쑥한 남자친구와 걸어가는 것을 목격한 후(심지어 교묘하게 로이가 보이지 않도록 연출되어있다), 결정적으로 옷깃을 여미고 있는 로이의 모습이란. 아, 이 어찌 신이 내린 센스이지 아니한가?
4.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단연 장모와, 아내와, 남편이 싸우는 방 안 씬이다. 세 사람의 무분별한 화를 두 사람의 1:1 상황으로 배치시킨데 있어, 인물이 치고 빠지는 블로킹은 가히 예술이다. 세 사람의 싸움이, 긴장을 유지하되 전혀 혼란스럽지 않은 것 또한 이 지점에서 설명된다.
5. 그 어떤 말이 필요할까? 이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은 딱 하나. 샐 수 없이 수 많은 감정과 배신과 음모와 사랑과 슬픔이 혼재하는 이 세계에서는 '어떤 것' 하나에 미친 자만이 안도할 수 있다. 영화에서 미신을 맹신하는 헬레나를 제외한 그 누구도 완전한 행복을 가지지 못한다. 이처럼 미신이든, 종교든, 아니면 인간이든, 돈이든, 예술이든, 과학이든. 미쳐야 살 수 있는 세계를- 우디 알렌은 이렇게나 유쾌하게 관객에게 이야기 하고 있다.
6. 그나저나 <환상의 그대>가 뭐냐? <당신은 귀인을 만날거에요>가 차라리 낫겠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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