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감상/영화

고백 Kokuhaku (2011)


1. 이 영화(혹은 원작인 소설)만큼 완벽한 로그라인을 가진 것도 드물다. '내 딸을 죽인 사람이 우리 반에 있습니다' 이렇게 잘 빠진 로그라인을 보고 어찌 안보고, 안읽을 수 있겠는가? 물론 로그라인 만큼이나 이 영화가 가진 스토리는 충분히 재미있다. 하지만 이 재미를 담은 '영화'라는 그릇은 그 어떤 영화보다 기이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. 영화의 첫 종업식 시퀀스에서 관객은 평소 접하지 못한 '이질감'에 압도당한다. 이러한 이질감은 미장센과 사운드에 국한되지 않는 전체적인 것이며, 마치 잘 만들어진 한 편의 단편영화를 보는 느낌이다. 하지만 <고백>은 100분이라는 포맷의 장편영화이다. 그 짧지도, 길지도 않은 시간동안 영화는 폭주한다. 100여분이란 시간을 끊임없이. 넘치고, 넘치고, 또 넘친다. 이 영화가 가진 기이한 형태는 다름아닌 '과잉'인 것이다.

2. 원작이 소설인 영화이니만큼, 특히나 많은 인물의 시점으로 끌어나가는 이야기이니 만큼, <고백>은 정말 '말'이 많은 영화다. 영화는 말로 시작해서, 말로 끝난다. 영화를 함께 본 후배는 이렇게 말 많은 영화가 즐겁다고 했지만, 적어도 내겐 이 많은 말들이 불편하기 짝이없었다. showing이니 telling이니 이런거 다 집어치우고. 일단 정보가 너무 많다. 말처럼 밀도 높고, 전달력이 뛰어난 장치도 없지만 이것이 너무나 많다보니 전혀 정리가 되지 않는 기분이다. 문제는 <고백>이라는 영화가 관객에게 전하는 text가 많은 것을 인지함에도 불구하고, 그것을 꾸역꾸역 관객에게 집어 넣는다는 것이다. 이는 가히 100분의 폭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. 다만, '재밌으니까'. 그러니까 관객은 또 꾸역꾸역 받아드린다. 이 어찌, 무식한 소통이지 아니한가? 하지만 이 영화가 가진 능력이 여기서 발휘된다. 다름아닌 '재밌으니까', 이것이 바로 스토리가 가진 힘이다. 그렇다면 연출이 망한 건가? 영화를 보고 난 후, 극심한 피로감을 체감한다. 이 피로는 수용한 text의 과부하보다, 끊임없이 밀려왔던 리듬에 있다. 정보는 마치 파도처럼 끊임없이 밀려온다. 밀려오고, 밀려오고, 또 밀려오고. 그러다보니 넘치고, 넘치고, 또 넘친다. 쉴 틈이 없다. '재밌는' 이야기니까, 이야기를 계속 따라 잡으려고 하는 관객은 뇌를 굴리고, 굴리고, 또 굴릴 수 밖에. 그러니 피로하다. 만약 이 연출의도가 피로함을 느끼게 하기 위한 것들이라면? 연출은 성공이다. 하지만, 적어도 나는 반대다. 고역인 영화(그로테스크한 스토리의 관점에서)를, 이렇게 고역스럽게 볼 필요가 있는건가?

3. 적어도 더빙판이었다면 좀 덜했을까? 우스게 소리로 KBS 더빙판을 기다린다 했지만, 이런 말 많은 영화들은 모국어가 아닌 이상 영화를 백퍼센트 받아드리기 어렵다. 특히나 자막을 읽기엔, 화면을 가득 채운 정보가 너무나 많은 <고백>은, 그렇게 말 많았던 <소셜 네트워크>와는 다르다. <소셜 네트워크>에서 정보의 루트는 말 '밖'에 없었지만, <고백>은 말 '도' 있는 것이다. 과연 모국어가 아닌 자막으로써 넘치는 정보를 가진 영화가 한국 시장에 먹힐까? 하는 부분도 지켜볼 만 한 지점 인 것 같다.

4. 앞서 열심히 깠지만, 그래도 칭찬해주고 싶은 부분 또한 많다. '과잉'. 하지만 이러한 과잉을 선택한 사람은 다름아닌 감독 본인이다. 넘치는 음악과, 넘치는 비주얼들. 이것들은 적어도 일정한 틀안에 갖혀있다. 다름아닌 시간과 영화라는 틀이다. 이 틀 안에서 과한 것들을 배치하는 것 또한 연출자의 영역이며, 연출자는 이 '과잉'을 시도로써 끝낸 것이 아니라 한 편의 영화를 창조해냈다.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은 '세계'를 만든 것과 같다. 그의 세계는 '과잉'된 것이며, 적어도 연출자로써의 '용기'와 '적당함'이 있지 않고서야 어려운 작업이다. 산으로 가느냐, 들로 가느냐가 아니라 이 영화는 명확하게 지옥으로 가고 있다. 그는 '용기'있는, '적당함'이 있는 세계를 성공적으로 창조한 셈이다.

5. 영화의 도입부, 종업식 시퀀스는 정말 완벽한 '단편영화' 같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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